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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정보

625 참전 16개국? 22개국? 625전쟁 미군 사망자 수

by 코페인 2025.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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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 16개국? 22개국? 625전쟁 미군 사망자 수

전쟁이 발발한 지 70여 년이 흘렀지만, 1950년 한반도를 지키기 위해 전 세계가 보여준 연대의 가치는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 깊숙이 녹아 있습니다. 당시 국제연합(UN)의 ‘단합된 힘’은 전투 파병국 625 참전 16개국과 6개 의료·후방 지원국(총 625 참전 22개국)이라는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여기에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은 비공식·간접 지원 국가들까지 더해지면, 한국전쟁은 명실상부한 ‛세계적 참전’의 무대였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각국의 파병 배경과 활약, 그리고 숫자에 가려진 이야기를 조명하여, 6·25전쟁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를 재해석해 보려 합니다.

한국전쟁, 왜 ‘세계 대전’에 버금갔나

  • 냉전의 전면전: 제2차 세계대전 종료 직후 형성된 동·서 진영 갈등이 한반도에서 직접 충돌했습니다. 소련과 중국은 북측을, 미국과 서유럽은 남측을 지지함으로써 체제 경쟁의 최전선이 됐습니다.
  • UN 첫 집단군 작전: 안보리 결의 83호·84호(1950.6.27, 7.7)는 ‘침략 억제’라는 명분 아래 UN 회원국의 군사 개입을 허용했습니다. 이로써 다국적군이 한반도에 집결했고, 국제법 질서 수호라는 선례를 남겼습니다.

전투병을 파병한 625 참전 16개국

파병국 최대 파병 인원·전투 이력 기억해야 할 전투
미국 178만 명, 전쟁 전 기간 주력. 인천상륙·참호전 모두 수행 토크빌 고지전, 장진호 전투
영국 5만 6천 명, 글로스터 고지사수·임진강 전투 글로스터 대대의 ‘죽음의 고지’ 사수
캐나다 2만 7천 명, 가평·임진 전투 가평 전투에서 연합 방어선 유지
호주 1만 7천 명, 크리스마스 고지·연천 지역 전투 글로스터 고지와 연계 지원 사격
뉴질랜드 6천6백 명, 해군 구축함 6척·포병 여단 투입 카파파포 포병의 정확 사격
프랑스 3천9백 명, 프랑스대대·유엔 프랑스 전투단 백마고지 사수전
터키 1만 5천 명, 상춘리·군우리 전투 ‘에르둘라트 고지’ 돌파, 용맹성 각인
그리스 1만 명, 공군 수송·보병 연대 파병 Naktong 강 방어 작전
네덜란드 5천3백 명, 크립터·하콕리·진지전 참여 영연방군과 공동 작전
벨기에 3천4백 명, 벨기에·룩셈부르크 대대 철의 삼각지대 저지
룩셈부르크 89명, 벨기에대대 편성 ‘가장 작은 동맹국’의 큰 헌신
필리핀 7천4백 명, 중대급 5차례 교대 ‘뱃사람 고지’ 방위전
태국 1만1천 명, 해병·육군 혼성 ‘메리골드 작전’ 장거리 수색
에티오피아 3천1백 명, 카카오 릿지 방어 ‘임진호의 사자’라는 별명 획득
콜롬비아 5천1백 명, 해군 구축함·육군대대 ‘올드 밸디 전투’에서 큰 손실
남아프리카 공화국 850명 조종사·지상요원, 공군제2비행중대 미그-15 요격 작전 지원

숫자로 본 전투 참전

  • 총 파병 34만여 명(미국 제외)
  • 외국인 전사 약 3만 7천 명, 실종·포로 및 부상 10만여 명

의료·후방 지원을 담당한 6개국 ― 6.25전쟁 참전국가

전투병력 외에도 의료·수송·시설 지원으로 활약한 6.25전쟁 참전국가 있었습니다. 이 6개국이 더해져 ‘625 참전 22개견국’이라는 공식 기록이 완성됩니다.

  1. 덴마크 – 병원선 유틀란디아 파견, 부산·인천 항만 인근에서 4,981회 수술 수행.
  2. 인도 – 제60 야전병원(5,000여 명) 운영, 간호장교·치과 의무관 동시 파견.
  3. 노르웨이 – 모바일 육군외과병원(NORMASH), 전장에서 직접·후송 치료.
  4. 스웨덴 – 400병상 규모 기지병원 운영, 종전 뒤 국립의료원 설립 지원.
  5. 이탈리아 – 공군 운항단 및 야전병원, 미군 부상병 후송 헬리콥터 운용.
  6. 독일(서독) – 공병·의료장교 파견, 장비·약제 등 전후 복구물자 지원.

참고: 일부 자료에선 스페인·포르투갈·오스트리아 등의 적십자단 의료봉사가 반영되지 않지만, 한국 정부 공식 통계는 위 6개국을 ‘의료지원 파견’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숫자에 포함되지 않은 ‘비공식·간접 참전’ 사례

  • 멕시코 – 자국군 공식 파병은 없었지만, 미군 편제로 참전한 멕시코계 병력이 10만여 명에 달했고, 정부는 35만 달러 상당 물자를 지원했습니다.
  • 아일랜드 – 군사 중립국이었으나 영국군에 자원입대한 아일랜드계 병사가 다수 존재합니다.
  • 푸에르토리코 – 미 본토 대비 높은 참전 비율, 65보병연대(‘보라색 하트’ 최다).
  • 수리남 – 네덜란드 식민지 신분으로 네덜란드군 소속 파견.
  • 콩고(당시 벨기에령) – 벨기에군 파견병 중 상당수가 콩고인으로 구성.

이들은 공식 통계에 포함되진 않지만, 실제 전장에서는 국적보다 ‘같은 편’이라는 연대감으로 싸웠습니다.

16 vs 22, 그리고 이후의 변화

  • 분류 기준 차이: ‘16개국’은 순수 전투병 파병국, ‘22개국’은 여기에 의료·후방 파견국을 합산한 숫자입니다.
  • 전후 재편: 1976년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5개 의료지원국 기념비’가 세워졌고, 2024년 독일은 재향군인·군사고문단 형태로 유엔군사령부에 가입해 ‘18번째 현재 회원국’이 됐습니다.
  • 역할의 확장: 종전 후에도 여러 국가가 참전용사 재방한, 전사자 유해 발굴, 군사교류 등을 통해 한·미 동맹뿐 아니라 다자 안보협력 체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6·25전쟁 참전국별 파병 규모 · 인명 피해 일람

(숫자는 각국 정부·UN사 · 역사기록 기준 최대 파병 인원·전투 중 사망자 중심. 부상·실종·포로는 ‘/’ 뒤에 병기. 단위: 명)

🟦 UN 전투 파병 16개국

6.25전쟁 미군 사망자 수를 포함한 참전국 희생자 수입니다. 그분들의 희생에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 미국 – 1,789,000 / 36,574 사망 (103,284 부상 · 7,826 실종)
  • 영국 – 56,000 / 1,109 사망 (2,674 부상 · 179 실종)
  • 캐나다 – 26,791 / 516 사망 (1,042 부상 · 33 포로)
  • 호주 – 17,164 / 339 사망 (1,216 부상 · 29 실종)
  • 뉴질랜드 – 6,000 / 45 사망 (79 부상)
  • 프랑스 – 3,421 / 287 사망 (1,350 부상)
  • 터키 – 14,936 / 741 사망 (2,068 부상 · 163 실종)
  • 그리스 – 10,495 / 196 사망 (459 부상)
  • 네덜란드 – 5,322 / 123 사망 (645 부상 · 3 실종)
  • 벨기에 – 3,172 / 106 사망 (348 부상 · 5 실종)
  • 룩셈부르크 – 44 / 2 사망 (17 부상)
  • 필리핀 – 7,419 / 112 사망 (299 부상 · 16 실종)
  • 태국 – 11,786 / 136 사망 (462 부상 · 300 실종)
  • 에티오피아 – 3,158 / 122 사망 (536 부상)
  • 콜롬비아 – 5,100 / 163 사망 (448 부상)
  • 남아프리카공화국 – 826 / 34 사망 (8 실종)

🟢 UN 의료·후방 지원 6개국 (22개국 완성)

  • 덴마크 – 630 / 사망 0 (병원선 유틀란디아)
  • 인도 – 3,500 / 사망 0 (제60야전병원)
  • 노르웨이 – 900 / 사망 3 (NORMASH 이동외과병원)
  • 스웨덴 – 1,124 / 사망 8 (부산 기지병원)
  • 이탈리아 – 200 / 사망 0 (의무·항공수송단)
  • 서독 – 160 / 사망 0 (공병·의무고문단)

※ UN 기록상 의료·후방 파견 인력은 ‘전투 사망 0’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으며, 일부 부상·사망은 본국 통계로만 집계돼 정확한 수치가 다를 수 있습니다.

🔴 적성국(북·중·소) 사망자수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KPA) – 약 260,000 (1950년 6월 기준) → 전 기간 400,000± / 전사 215,000 추정 (부상·실종 300,000 ↑)
  • 중국인민지원군(PVA) – 2,973,000 누계 / 중국 공식 전사 114,000 (부상 380,000 · 실종 25,000 ), 서방 추정 전사 400,000±
  • 소련(공군·고문단) – 26,000 상주 / 전사 299 (주로 전투조종사)

  • 숫자는 각국 공식 통계·UN사 데이터·위키 자료를 종합한 대략치입니다.
  • 전쟁 후 70여 년이 흘러 신원 확인·재통계가 이어지면서 세부 수치는 계속 보정되고 있습니다.
  • 민간인 피해는 남북 합해 200만~300만 명 사망으로 추정돼, 군사 피해를 훨씬 상회합니다.

이 리스트는 블로그 본문에서 전투 파병 16개국·의료지원 6개국·적성 3개국의 인적 손실을 한눈에 비교하려는 목적에 맞춰 축약·정리됐습니다. 필요에 따라 부상·실종·포로 통계 및 전투별 상세 전과를 덧붙이면 더욱 입체적인 콘텐츠 구성이 가능합니다.

오늘을 비추는 교훈

  1. 다자안보의 중요성 – 약소국이 위협받을 때, 집단 방어 체계가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증명했습니다.
  2. 참전국과의 외교 자산 – 관광·문화·방산·개발협력 분야에서 참전국 네트워크는 지금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3. 평화유지 활동 모델 – 인도·덴마크·스웨덴 등 의료지원국의 사례는 현대 PKO(평화유지군) 로텐션 모델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4. 전쟁기억의 세계화 – 서울·워싱턴·오타와 등 참전국 수도에 세워진 한국전 기념비가 전쟁사를 ‘세계사의 일부’로 각인시키고 있습니다.

결론

6·25전쟁은 단순히 한반도 남북 간 무력 충돌을 넘어, 냉전 초기에 세계가 이념을 두고 맞선 ‘열린 전장’이었습니다. 전투를 직접 수행한 16개국, 생명을 살린 6개 의료지원국, 그리고 숫자 뒤에 가려진 수많은 간접 참전·물자지원국이 존재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은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몫은 ‘은혜를 잊지 않는 기억’과 ‘더 나은 세계 평화 기여’라는 두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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