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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연예

8월의 시모음

by 코페인 2025.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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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시모음

본 글에서는 이해인, 오세영, 이정순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부터, 윤보영·고은영 등 현대 서정시를 이끄는 목소리에 이르기까지 15편의 8월의 시모음을 원문 그대로 인용하고, 작품 해설·감상 포인트를 덧붙여 ‘8월의 정취’를 다층적으로 조명합니다. 8월의 시모음을 통해 풍성한 시적 스펙트럼을 통해 독자 여러분이 더위 속에서도 새로운 위안과 통찰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8월의 시모음


뜨거운 태양, 바람 없는 열대야, 장맛비가 지나간 뒤 찾아오는 파란 하늘 — 8월은 발끝에 남은 여름의 온기와 어깨에 깃드는 초가을의 서늘함이 한데 섞인 특별한 달입니다. 시인들은 이 짧고도 길게 느껴지는 시간을 어떻게 노래했을까요?


〈8월의 시〉 - 이해인

햇볕에 춤추는 하얀 빨래처럼
깨끗한 기쁨을 맛보고 싶다

영혼의 속까지 태울 듯한 태양 아래
나를 빨아 넣고 싶다

여름엔
햇볕에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향기로운 땀을 흘리고 싶다
땀방울마저도 노래가 될 수 있도록
뜨겁게 살고 싶다

여름엔
꼭 한번 바다에 가고 싶다
오랜 세월 파도에 시달려온
선 이야기를 듣고 싶다
침묵으로 엎드려 기도하는 그에게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오고 싶다

작품 해설

  • 하얀 빨래·태양의 대비를 통해 순수·열정을 상징화.
  • ‘포도송이’ ‘향기로운 땀’ 등 후각·촉각적 이미지로 살과 영혼의 ‘온도’를 동시에 묘사.
  • 수도자로서 삶을 관조하면서도 현세적 기쁨을 적극 수용하려는 의지가 드러남.

감상 포인트

  • “땀방울마저 노래”라는 구절은 노동·기도·삶을 유기적으로 통합.
  • 빨래·포도·바다가 불러내는 청색 계열 이미지가 여름 끝자락의 청량감을 환기.

〈8월의 기도〉 - 이해인

곰팡이 냄새 가득한
우울한 이야기들로
잠이 오지 않던 장마철
단물도 향기도
다 빠져버린 과일처럼
맛이 없던 일상의 시간들을
햇볕에 널어야겠습니다.

8월엔 우리 모두
해 아래 가슴이 타는
한 그루 해바라기로 서서
주님을 부르게 하소서.

그리움조차 감추어두고
오랜 나날 헤어져 산
남과 북의 한겨레가
같은 땅을 딛고
같은 하늘을 우러르며
하나된 나라에서 살게 하소서

절망했던 만큼의 희망을
큰 나무로 키우며
사랑의 삽질을
계속하게 하소서
하나 되기 위한 진통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용서의 어진 눈빛과
화해의 맑은 마음으로
함께 바라보는 산천이
더욱 아름다운 곳
어머니 나라의 평화
하나 된 겨레의 기쁨
꼭 이루어 내게 하소서.

8월엔 우리 모두
기다림에 가슴이 타는
한 그루 해바라기로 서서
주님을 부르노니

작품 해설

  • 장마와 곰팡이 → 우울 서사, 햇볕과 해바라기 → 구원의 빛으로 변주.
  • 분단 현실을 ‘남과 북의 한겨레’라는 기도문 형식으로 승화.

감상 포인트

  • ‘사랑의 삽질’이라는 일상어를 성스러운 컨텍스트에 배치해 풍자적 따뜻함 형성.
  • 공동체적 치유와 평화를 향한 신앙적 의지 강조.

〈8월의 시〉 - 蕓香(도지현)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고
쭉 벋은 큰길이 있으면
자드락 길도 있고 에움길도 있더라

세상의 일이란
가면 오고, 오면 가야 하는 것
숨차게 달려온 길
잠시 멈춰 쉬어 가는 여유도 있어

8월은
힘들게 달려온 세월
잠시 쉬어 가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날씨가 휴식을 주는데

인생의 여정에서
잠시 휴식을 가지고 여유롭게 사는 것
그런 맛이 있어
8월은 살 만한 계절이 아닌가 싶다

작품 해설

  • 길의 유형(큰길·자드락길·에움길)을 통해 삶의 다양성을 도식화.
  • 8월을 “잠시 쉬어 가라는 하늘의 계시”로 명명해 휴식의 미학을 제안.

감상 포인트

  • 서정성과 교훈성이 결합된 담백한 문체.
  • ‘날씨가 휴식을 준다’는 관점으로 기후를 서사적 주체로 격상.

〈8월의 시〉 - 이정순

열대야에 밤새
불면의 밤은 길고도 길다

한낮 아스팔트
지면이 흐느적거리고

매미 소리만
울려 퍼지며 한여름
노래를 목이 터지라 부르고

문이란 문을
다 열어놔도 바람은
피서지로 떠난 것인가 보다

작품 해설

  • ‘문이란 문’ ‘아스팔트 지면’ → 도시적 공허 극대화.
  • 매미 소리를 ‘폭염 속 유일한 음악’으로 제시해 청각적 대비 형성.

감상 포인트

  • 바람마저 “피서지로 떠난” 아이러니가 주는 역설적 유머.
  • 고온다습한 밤의 무력감을 미니멀리즘적 어휘로 표현.

〈8월의 시〉 - 오세영

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 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풀숲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 한 번쯤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 산을
생각하는 달이다

작품 해설

  • 꽃·파도·산이라는 자연 순환 메타포로 ‘정상 이전의 성찰’을 시각화.
  • 초록과 단풍의 계절 대비를 통해 전환기적 사유를 부각.

감상 포인트

  •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 동양적 윤회관과 맞닿음.
  • ‘법석’ ‘녹음’ 등 불교어·한자어의 혼용으로 고전미 더함.

〈8월 담쟁이〉 - 강현덕

동그랗게 꿈을 말아 안으로 접을래
빠알간 흙벽 속으로 자꾸 말아 넣을래
다져서 쌓은 꿈들이 사방으로 터져도

작품 해설

  • 담쟁이의 나선형 성장을 ‘꿈의 확장’으로 은유.
  • ‘빠알간 흙벽’ → 여름의 적색 에너지와 꿈의 모판.

감상 포인트

  • 행간의 여백이 독자 해석을 유도하는 시적 압축.
  • ‘사방으로 터져도’ → 폭발적 생명력 강조.

〈8월〉 - 목필균

누구의 입김이 저리 뜨거울까

불면의 열대야를
아파트촌 암내 난 고양이가
한 자락씩 끊어내며 울고

만삭의 몸을 푸는 달빛에
베란다 겹동백 무성한 잎새가
가지마다 꽃눈을 품는다

작품 해설

  • ‘아파트촌 암내 난 고양이’ → 도시 생태의 역동성.
  • ‘만삭의 달빛’ ‘꽃눈’ → 임신·탄생 메타포로 계절의 임박한 변화를 암시.

감상 포인트

  • 열대야·짙은 달빛·고양이 울음이 만든 시각·청각·후각적 삼중주.
  • 생명 잉태와 피로감이 교차하는 모성적 서정.

〈8월의 나무에게〉 - 최영희

한줄기 소낙비 지나고
나무가 예전에 나처럼 생각에 잠겨있다

8월의 나무야 하늘이 참 맑구나
철들지, 철들지 마라
그대로, 그대로 푸르러 있어라

내 모르겠다
매미소리는 왜, 저리도 애처롭노

작품 해설

  • 나무를 ‘철들지 마라’라며 타이르는 자기 투영적 독백.
  • 매미 울음의 ‘애처로움’이 주는 허무·쓸쓸함.

감상 포인트

  • 소나기 이후 맑은 하늘 → 정화와 사색.
  • 철들지 않으려는 바람 속 永遠한 청춘의 욕망.

〈8월의 바다〉 - 이채

8월의 바다
그 바다에서
얼마나 많은 연인들이 만나고
그리고 헤어졌을까

넘실대는 파도에 하얗게 이는 물보라
그 물보라에
얼마나 많은 사랑이 밀려오고
그리고 쓸려 갔을까

그래서
겨울바다는 늘 쓸쓸한가 보다
8월의 바다 그 바다 저편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숲으로 떠 있는 외로운 섬 하나

하얀 갈매기 날고
구름도 쉬어가는 그곳
그곳에 혹시
보고픈 연인이라도 머물고 있지나 않을까

그래서
그 섬은 늘 그리운가 보다

작품 해설

  • 사랑·이별·그리움을 바다·파도·섬의 삼중 이미지로 형상화.
  • ‘겨울바다는 늘 쓸쓸한가 보다’ → 계절 선후관계로 상심의 깊이 가늠.

감상 포인트

  • 섬·갈매기·구름이 빚는 수평선적 서정.
  • 연인·바다의 시간성을 병치해 보편적 향수를 자극.

〈팔월 폭포수〉 - 심의윤

돌과 돌 사이 맑은 물
회용 돌이 치더니
콸콸 틈 사이로 내려서면
걸쳐진 것 벗어던지고
선녀탕 꽁지만 남기고 들어간다

​돌과 돌 사이 맑은 물
회용 돌이 치더니
콸콸 틈 사이로 내려서면
걸쳐진 것 벗어던지고
선녀탕 꽁지만 남기고 들어간다

大暑 태양은
나뭇잎 사이 파고들어 오려고
붉은 초점 빛을 쏘아 보지만
청색 잎 포장을 덮어쓴
바위 속 선녀탕에 얼씬 못하고

폭포수 아래서
흰머리 휘날리며 가부좌 자리 잡고
눈 감으면 들리는 것은 자장가
장단뿐이며
모든 것을 버리고 침묵에 든다

삼복중에 걸어놓은
大暑가 한 발 두 발 갈 길을 떠나고
그늘에 펼쳐놓은 풍성한
음료수 맛이
떨어지는 폭포수에 한시름 잊는다

작품 해설

  • 폭포·선녀탕 이미지로 삼복더위를 씻어내는 수분 서정.
  • 대서(大暑)와 풍경의 대비가 계절 극점을 부각.

감상 포인트

  • ‘흰머리 휘날리며 가부좌’ → 노년의 해탈적 평온을 폭포수와 연결.
  • 물소리·풍성한 음료수 → 청량한 청각·미각 환기.

〈8월의 초상〉 - 임영준

야금야금 베어 먹어도
살금살금 기어다녀도
청춘은 간다

넘실 거리는 바다
흐르는 살별을 따라
영그는 섬

다시 한번
익을 만큼 익었으니
기다림의 선을 그어 가리라

작품 해설

  • ‘청춘의 소멸’을 바다·섬·살별로 은유하여 시간성 도입.
  • “익을 만큼 익었다”는 구절로 무르익은 성숙을 선언.

감상 포인트

  • 진행형 현재에서 과거·미래를 동시에 조망하는 경과미.
  • ‘기다림의 선을 그어 가리라’ → 스스로 운명을 그린다는 의지적 결의.

〈8월의 편지〉 - 천준집

8월엔 당신께 편지를
적겠습니다
뜨거운 태양만큼 내 마음의
열정을 모두 담아 당신께
보내 우리다

혹여
가슴으로 쓴 편지가 눈물에 젖는다
하더라도
시원한 파도 소리와
계곡의 물소리
종달새 울음소리도 함께
담겠습니다

등나무 그늘에 솔바람은
끈적한 살갗에 스치 우고
땡볕에 울어주는 매미 소리가
한 가닥 위안이 되는 8월
그 8월에 당신께 편지를
적겠습니다

작품 해설

  • 편지를 매개로 **자연 음향(파도·계곡·종달새)**을 동봉하는 감각적 서간시.
  • 끈적한 매미 소리에 묻어나는 위안의 아이러니.

감상 포인트

  • ‘뜨거운 태양만큼’이라는 온도형 수사로 사랑의 열정 표현.
  • 편지가 주는 아날로그적 정서가 계절적 고독을 달랜다.

〈8월 마중〉 - 윤보영

해 돋는 언덕으로
곧 만날 8월을 마중 와 있습니다.

무성한 풀잎 냄새보다도
낙엽 느낌이 더 진한 걸 보니
8월이 가까이 와 있나 봅니다.

8월에는
아름다운 시간으로 채우겠습니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도 듣고
그동안 만나지 못한
그리운 사람도 만나겠습니다.

느낌 좋은 9월이
미소로 걸어올 수 있게
행복한 마음으로 보내겠습니다.

8월을 마중 나온 내 안에
절로 미소가 이는 걸 보니
떠날 준비 중인 7월도 만족했나 봅니다.

애썼다.
내 친구 7월!
사랑한다.
행복한 선물 8월!

작품 해설

  • 7월·8월·9월을 의인화하여 시간의 흐름을 친구·연인 관계로 재구성.
  • ‘낙엽 느낌이 더 진하다’ → 8월 속 가을 기운을 예견.

감상 포인트

  • 계절 환승점에서 ‘미소’ ‘행복’ ‘선물’을 제시하는 긍정의 레토릭.
  • 바쁜 현대인에게 시간 예술의 여유를 권함.

〈8월의 선물〉 - 윤보영

8월의 선물 – 윤보영

8월은
내가 나에게 휴식을 선물하는
의미 있는 달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를 열면서 다짐했던 것을
실천하고 있는 나에게
선물을 주는 8월

그 선물속에는
가족과 친구가 있고
함께 지낸 사람들의
고마움도 담겨 있겠지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또 다른 한 해를 향한 남은 시간도
더 빠르게 지나가겠지요

8월에 받은 선물이
가을과 겨울로 이어져서
행복이 될 수 있게
꿈이 담겼으면 좋겠습니다.

그 8월을 나에게 선물하겠습니다.
사랑을 선물 받겠습니다.

작품 해설

  • 자기 돌봄(Self-care)을 ‘선물’로 재정의하는 셰어드 해피니스 모티프.
  • 새해 목표 회고 → 8월 보상 → 가을·겨울로 이어지는 목표 관리형 서정.

감상 포인트

  • ‘시간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 속도감유한성 인식.
  • ‘꿈이 담겼으면 좋겠습니다’ → 희망의 전가(transfer of hope).

〈8월처럼 살고 싶다네〉 - 고은영

친구여,
메마른 인생에 우울한 사랑도
별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가는 길목
화염 같은 더위 속에 약동하는 푸른 생명체들
나는 초록의 숲을 응시한다네

세상은 온통 초록
이름도 없는 모든 것들이
한껏 푸른 수풀을 이루고
환희에 젖어 떨리는 가슴으로 8월의 정수리에
여름은 생명의 파장으로 흘러가고 있다네
무성한 초록의 파고
영산홍 줄지어 피었다.

친구여,
나의 운명이 거지발싸게 같아도
지금은 살고 싶다네
허무를 지향하는 시간도
8월엔
사심없는 꿈으로 피어 행복하나니
저 하늘과 땡볕에 울어 젖히는 매미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 속에 나의 명패는
8월의 초록에서 한없이 펄럭인다네

사랑이 내게 상처가 되어
견고하게 닫아 건 가슴이 절로 풀리고
8월의 신록에 나는 값없이 누리는
순수와 더불어
잔잔한 위안을 얻나니
희망의 울창한 노래들은 거덜 난 청춘에
어떤 고통이나 아픔의 사유도
새로운 수혈로 희망을 써 내리고 의미를 더하나니

친구여,
나는 오직 8월처럼 살고 싶다네.

작품 해설

  • “8월의 초록” “매미 소리” → 삶의 고통을 씻는 자연의 카타르시스.
  • “거지발싸개” “거덜 난 청춘” 등 구어체로 현실의 거칠음을 투박하게 노출.

감상 포인트

  • 허무를 ‘사심 없는 꿈’으로 전환하는 긍정적 파토스.
  • 8월을 “생명의 파장”으로 정의해 존재론적 기세를 드높임.

맺음말 - 8월, 뜨거운 숨결로 빚어진 서정의 팔레트

15편에 걸친 시편들은 서로 다른 목소리로 여름의 정점과 가을의 문턱을 노래합니다. 뜨거움과 서늘함, 방황과 휴식, 소멸과 잉태라는 상반된 키워드가 8월이라는 시간 안에서 조화롭게 교직(交織)됩니다. 이해인의 기도문은 공동체적 평화를 부르짖고, 오세영·이정순은 도시와 자연의 경계에서 사색을 권하며, 윤보영·고은영은 삶의 피로 속에서도 희망을 선물합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이 시모음을 통해 폭염 속에서도 내면을 적시는 청량함을, 그리고 다가올 계절을 맞이할 **정서적 ‘여백’**을 얻게 되시길 바랍니다. 8월은 쉼표이자 느낌표, 끝이자 시작입니다. 여러분의 여름도 시 한 줄처럼 오래도록 울림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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